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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후기 롤뱃
글쓴이 : 이필창
작성일 : 2023-11-21 05: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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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5
목덜미로 사랑하는 이의 숨결이 느껴졌다.
시온은 그 새근대는 호흡에 어렴풋이 잠에서 깼다.
희미하게 눈을 뜨자 아직 잠든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새하얀 얼굴 위로 검은 단발머리가 흩어진 모습이 거짓말처럼 예뻐, 시온은 제게 머리를 기댄 여자를 두 팔로 꼭 끌어안았다.
이 무서운 성녀의 잠든 얼굴을 볼 수 있다니, 시온은 이게 본인만의 특권임을 자부하며 이비의 결 좋은 단발에 입을 맞췄다.
그러길 한참, 이비도 잠이 깬 듯 나직이 중얼댔다.
“그만 치대.”
성녀가 귀찮다는 듯 제게 드리운 얼굴을 밀었다. 그래서 시온은 그 손끝에도 입을 맞췄다.
시온이 끝도 없이 지분대자, 이비가 시온을 바라보며 중얼댔다.
“저주가 덜 풀린 건 아닐 텐데.”
“무슨 소리야?”
“왜 아직도 덜떨어진 것 같지?”
“말이 심하네…….”
시온이 덜떨어졌다는 말에 항의하듯 이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것도 그에게만 가능한 일이기에, 시온은 연인과 함께 눈을 뜰 수 있는 매일 아침이 그저 좋았다.
그래서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네가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 무엇을 참고 있는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뭐가?”
이비의 희미한 물음에 시온은 느긋이 되물었다.
“세상이 널 이용하고 잡아먹었는데.”
이비는 이렇게만 읊조리고 말을 다 맺지 않았다. 그래서 시온은 이비의 말을 그저 짐작한 채, 부드러운 몸에 얼굴을 기대며 대답했다.
“그래서 널 만났잖아.”
성녀의 자비에 저주가 풀린 지도 어느덧 반년.
시온은 더 이상 지난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십 년의 시간을 빼앗겼지만, 명예도 가족도 잃고 긍지마저 부정당했지만, 그는 정말 괜찮았다.
왜냐하면 너를 만났으니까.
그래서 너를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너에게 구원받기 위해 떨어진 나락이었다고 생각하면 그마저도 다행이니까.
시온은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이제는 내가 널 구할 거라고 맹세했다.
같은 시간에 갇혀 몇 번이나 너를 잃었지만, 그때마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구하는 것만이 내가 살아 있는 이유니까.
사랑하는 여자가 다섯 번 죽고 여섯 번째 기회를 얻었을 때만 해도 시온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시온은 아직 어리고 여린 너를 알게 되었을 때 이게 얼마나 가소로운 착각이었는지 깨닫고 후회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자신을 죽도록 탓하며 숨죽여 울었다.
미안해서, 홀로 구원받은 채 응달에 남은 너를 마지막까지 알아채지 못한 게 다만 미안해서.
시온은 이비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는 이비 아리아테의 연인은 아니었다.
그저 이비에게 구원받은, 구원자의 속내는 까맣게 모른 채 홀로 사랑에 빠진 바보 같은 남자에 불과했다.
그래서 점성술사는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숨죽여 울었다.
그저 너의 모든 것이 슬퍼, 사랑하는 아이가 몰래 지켜보는 것도 모른 채 울고 말았다.
.
.
.
점성술사가 아닌 시온 라우렐이 실패와 후회로 점철된 그 남자의 시간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지 불과 한 달.
그는 왜인지 불편하게 바닥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두 쌍의 시선을 아직 깨닫지 못한 채 곤히 자고 있었다.
“시온, 일어나.”
잠결에 소년의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덧 익숙해진 유비아의 목소리였다.
시온은 이놈이 또 밥 달라고 깨우나 보다 싶어 못 들은 척했다.
그러자 유비아가 시온의 뺨까지 찰싹찰싹 때리며 말했다.
“얼른 안 일어나면 디에스가 널 공격할지도 몰라.”
디에스? 공격……?
시온은 이해하기 힘든 언어의 조합에 억지로 눈을 떴다.
그러자 가물가물한 시야로 제 옆에 웅크리고 앉은 유비아와 그 뒤에서 싸늘한 혐오의 시선을 보내는 이비의 집사가 보였다.
이게 뭐지?
시온이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헷갈려 하는데, 유비아가 덤덤히 되물었다.
“왜 복도에서 자는 거야?”
그 말에 시온은 별로 좋지 않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유비아의 말마따나 시온은 어떤 문에 등을 기댄 채 복도에 앉아 자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깨닫는 순간 비로소 퍼뜩 잠에서 깼다.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허리가 아프다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지금 시급한 건 밤새 앉아 있던 허리의 상태가 아니었다.
“만약 그 뒤가 이비의 침실이면 너는 구제받지 못해.”
유비아가 시온의 위기를 담담히 읊어 주었고, 시온은 그제야 이비의 집사가 왜 저렇게 경멸에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지 이해했다.
누가 봐도 오해할 상황에 시온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시온은 남의 침실 앞에서 밤새 진을 치고 있던 남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뭐라고 해명할 수도 없었다. 어제 일을 발설하면 이비 아리아테가 과연 자신을 용서할까? 시온은 이비의 싸늘한 눈빛을 또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련한 백작은 두 사람 치의 경멸과 맞서며 황급히 둘러댈 말을 찾았다.
“이건…….”
그런데 시온이 막 변명하려는 순간, 이비의 침실 문이 벌컥 열리며 시온의 머리를 강타했다.
쾅!
시온이 아프기보단 놀라서 얼어붙자, 문틈으로 이비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더니 문 뒤의 백작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작님, 왜 여기 계세요?”
이비의 순진무구한 물음에 디에스와 유비아의 시선이 한층 가늘어졌다.
하지만 시온에겐 도통 해명할 틈이 없었다. 이비가 디에스와 유비아를 발견하고 돌아본 탓이었다.
말갛게 씻고 나온 이비는 어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온을 뒤로한 채 밤새 고생한 두 사람을 맞이했다.
그래서 시온은 짐짓 당황했다.
또 꿈을 꾼 건가 헷갈렸다. 아니면 이비가 어제 일을 없던 일로 지우려나 싶었다.
그래서 내색 없이 긴장한 채 이비의 옆모습을 눈으로 쫓을 때였다.
디에스와 유비아에게 아침 식사부터 하자고 말하던 이비가 시온의 시선을 느낀 듯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이비는 시온을 잠시 쳐다보더니, 아직 문 앞에 진을 친 그를 가볍게 지나쳤다.
그래서 시온은 동상처럼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이비가 지나가며 아무도 모르게 손끝을 건드려서, 놀라서 쳐다보는 그에게 새침하게 눈짓해서, 그래 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도로 시치미를 떼 버려서.
심장이 조각조각 깨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시온은 타는 듯이 뜨거운 얼굴을 손으로 감출 수밖에 없었다.
***
공중대륙은 전형적인 형태로 세공된 다이아몬드 모양이다.
우선 넓고 평평한 윗면이 있고, 거기서 가장자리로 가면 덜컥 경사가 진다. 하강하는 경사의 정점이 대륙의 가장 넓은 옆 둘레를 이루면 그 밑에서부턴 가파르게 부서지며 한점으로 수렴하듯 뾰족한 끝을 이룬다.
이런 지형을 가진 탓에 티엔다비스에서 바다를 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까마득히 낮은 곳에 있는 바다를 보려면 비스의 임계점을 지나 대륙의 가장자리로 가야 하는데, 거기서 바다가 보일 때까지 내려갔다 무사히 돌아오려면 커다란 성을 수십 번 휘감고도 남을 길이의 밧줄이 필요했다.
그래서 티엔다비스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 뿐이었다.
하나는 타르데스의 따님께 대단한 편애를 받아 바다 위를 비행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다가 정말 간신히 보이는 서부의 협곡에 방문하는 것인데 어느 방법으로든 바다를 본 사람은 티엔다에서도 손꼽히게 적었다.
그리고 바다를 볼 수 있는 두 가지 수단을 모두 소유한 사람은 티엔다비스를 통틀어 시온 라우렐, 단 한 사람뿐이었다.
이렇게 두고 보면 정말 다 가진 백작님이지만, 사실 어제만 해도 그의 하루는 눈물겨웠다.
오전만 해도 그는 이비를 볼 생각에 들떠 있었다.
오후엔 왜인지 차가운 이비의 태도에 번민했다.
이비가 자신과 같이 있고 싶지 않다고 직언할 땐 가슴 어디쯤이 뭉개지는 기분이었다.
예상보다 더한 냉대에 시온은 수치심마저 느꼈지만, 그럼에도 이비를 붙들고 실랑이를 벌인 건 누구 말처럼 자존심이 없거나 적당히 넘어가는 예의조차 몰라서가 아니었다.
다만 못 본 사이 오히려 견고해진 이비의 거부가 두려워 필사적으로 붙잡은 거였다.
어제 시온은 붙잡다 못해 매달렸고, 매달리는 걸로 모자라 졸랐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이비가 왈칵 울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그때 이비보다 더 기겁한 사람은 사실 시온이었고, 시온은 이비를 안고 달래면서도 이 모든 게 해괴한 농담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혼미함은 하루가 지난 오늘까지도 여전히 이어지는 중이었다.
“혼자 뭐 해요?”
바다를 바라보던 시온의 등 뒤로 달콤한 목소리가 다가왔다.
이미 발소리를 듣고 있던 시온은 마음을 최대한 가라앉히고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남몰래 기울인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는 자신에게 먼저 다가오는 이비를 보고 다소 버거운 감동을 느꼈다.
시온이 입을 떼지 못해 이비를 그저 쳐다보자, 이비가 그의 옆에 앉으며 새치름하게 중얼댔다.
“왜 거기서 자고 있던 거예요?”
“누가 가지 말라고
롤뱃
바람에.”
“나중에 가서 자라고도 했잖아요.”
“그래 놓고 계속 말을 걸었죠, 누가.”
시온은 이비가 예뻐서 어쩔 줄 모르면서도 실랑이할 때는 절대 지지 않았다. 이비가 똑똑하게 따지는 목소리를 듣고 싶은 탓이었다.
“혹시 디에스가 물어보면 백작님 혼자 이상한 사람이라고 할 거예요.”
이비가 눈을 흘기며 투덜댔다. 그러더니 가벼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디에스하고 유비아는 잠깐 자러 갔어요. 밤새 헤매서 많이 피곤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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